생각 무력감 / 여름방학 / 허세 / 중2병 2008/08/14 03:55 by Lucapis

여름이었는지 봄이었는지 계절조차 모르겠다.

이 방은 자주 계절이 바뀐다. 중앙냉방이라니. 난방은 개별난방인데 어째서 중앙냉방인지는...
덕분에 창문도 없는 방이 더 후끈해진다. 이 좁은 고시텔 한 방에는 조그마한 냉장고와 체온, 컴퓨터의 열기로 꽉꽉 채워진다. 물론 피튀기고 열받는 게임을 할 때는 더 빨리 데워진다. 더위에 절어지기 일보직전에 복도 저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관리자 아주머니의 발소리로 '이제 에어컨을 켜겠구나'한다. 그리고 우우우웅 하는 건조한 소리가 시작된다. 건조한 바람이 내 머리쪽 냉풍구를 통해 들어오게 된다. 냉풍구는 천장에 붙어있고 바람 구멍의 크기를 조절 할 수 있다. 이름하야 '수동 냉풍조절장치'라고 할까. 키가 한 190cm은 되어야 가능한 작동위치.

으슬으슬 추워지니 컴퓨터를 하다 말고 침대 위에 올라가 열심히 구멍을 조절하려 단추를 돌려댄다. 그 안으로는 냉풍도 새어나오지만 어둠도 함께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좁고 검은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내 방 천장을 지나 맞은 편에 있는 방에까지도 이어져 있다. 2년 정도 후에는 아마도 찬바람뿐만 아니라 갖가지 벌레들이 살게 될 것만 같았다. 가끔 그 세계를 돌아다니다 누구의 방에 들어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최근 무력감에 휩싸여있다. 광합성을 하기 힘든 방 구조도 그러하겠거니와, 무턱대고 만나버린 대단한 사람들로 인한 것도 있다. 이러한 무력감이 나에게 어떤 열정이란 불을 지피게 해줄 원동력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방면으로는 점차 손을 놓게 만들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양 극단의 처방인 셈이다. 이제 내 머리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이런 인간이었던가. 이 정도의 인간이었던가 라는 생각도 들고 이제 학과 공부에 대한 회의도 들고 3년이란 시간동안 보냈던 이러저러한 활동들이 단순히 내 휴대전화에 몇명의 주소록으로만 남아있단 생각을 해버렸다. 맞다 이런 생각은 해버렸다라고 하는게 적정할 것이다. 이렇게 털어놓으니 선배는 그래도 '그게 자라는 증거'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세상을 등져버릴 것도 아닌데 급속하게 주마등을 스쳐지나가는 나의 일대기.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요즘 논란의 중심인 '허세'가 고개를 쳐든다. 그리고 씨익 웃어보인다. '너도 다를바 없고 그냥 중 2병에 걸린거야.' 라고. 허세근석, 허세려원. 뭐 예전에 한동안 유행하던 '허세부리지마'대사도 여기 중간에 놔두니 꽤 그럴싸하다. 오밤중에 글을 쓰면 지나치게 감정이 복받혀 글이 유치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래 오늘도 약간 유치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 귀신같은 사람'은 바로 이럴 때 사용해야 하는건가.

당황스럽다. 대중들은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걔는 그렇다더라 얘는 이렇더라로 소개팅의 첫만남 중 대화가 안풀릴때 이렇게 이어갈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다면 기껏 쌓아놓은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주겠지만. 내 옆에 친구가 누구를 사귀고 밥은 뭘 먹고 몸매는 뭘로 유지하고 여행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그렇게 궁금하지 않다. 그냥 미니홈피에 N이라는 주황색 아이콘이 깜빡거리면 그냥 들어가서 유난히 많이 업로드된 사진의 숫자를 보며 어디 다녀왔구나 정도로 생각해버리면 그만이니. 하지만 내 옆에 있지도 않은 텔레비전에서만 본 연예인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몇몇 감춰왔던 연예인들이 막상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자주 언급하기 시작하니 대중들은 무척이나 관심을 보이고 예상밖의 반응들을 보인다. 마냥 좋은 팬들과 마냥 싫어죽겠다는 안티들. 때론 안티도 팬의 일종이라고 관심을 주니 고맙게 생각한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댓글의 수준들을 지켜보면 '관심'이 아니라 누군가에데 하는 '사주使嗾'에 더 가깝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간에는 참으로 흥미로운 점이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쁜 인상을 선호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슬프긴 하지만 엄친아의 뭔가 어설픈 점 한개를 찾게 되면 그 점을 인간적인 모습이라며 내심 안심하게 되는 것이 그 쯤이겠다. 완벽해보이는 브라운관 속 연예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찾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누가 올리건 말건 오늘의 투데이가 몇이건 말건 상관이 없으면 네가 허세니 뭐니 이야길 하는것도 그만할 것일텐데 본능적으로 때로는 버릇처럼 이끌린다. 참 복잡하다. 물론 이렇게 나도 쿨한척 말은 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메인화면에 'XX'이런사진은 그만!이라던가 '연예인커플의 자연스러운 데이트장면'과같은 호기심을 발동하게 만드는 제목들이 매일같이 업데이트되니 말이다. 어쩌면 이런 매체들의 행동들이 이런 상황을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여전히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카메라 앞에서도 정말 예쁜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이 허심탄회하게 대중들과 만나는 장소는 미니홈피다.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하고 있는 연예인은 그리 많지 않다. 간단히 올리고 그때 느낀 감정들을 일기장처럼 쓰면 되는 미니홈피를 애용하고 있는 것이다. 폰으로 찍어 바로 올릴 수도 있으니. 생긴 것도 다른 블로그 서비스에 비해 만만하게 생겼고말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연예인들의 미니홈피로 놀러간다. 연예인들도 그냥 우리랑 같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다. 아직 우리 그러고 보니 OECD국가중에서 국민총생산이 높은 편은 아니다보니 연예인들의 호화로운 듯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해지기도 한다.(높아도 빈부격차라는게 존재한다만...)그래도 그들역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어떻게 했겠거니... 생각해야겠다. 그냥 어렸을때 쓴 글은 누구나 그런것쯤은 당연한 것 아닌가.

아무튼 위에 중 2병이  나와서 말인데, 허세라는 증상으로 대표되는 병이다. 병은 아니고 누군가가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일본사람중 한사람이 어린 소년들이 어른이 된 것인양 커피를 마신다거나, 하.. 인생이란 무엇인지 고민을 한다던가 어른들이란.. 이라는 발언을 한다던가 하는 것을 보고 만든 말이라 하는데 그게 정말인지는 미지수다.

(중2병에 대한 포스팅)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친절해서 링크를 업어온다
참고로 2ch라는 일본 커뮤니티는 한국의 DC인사이드와 매우 비슷한 분위기라고 한다. 웃자고 만든 신조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디씨인사이드의 빠삐놈이나 고자라니, 병맛, 지못미, 안물 등등..) 일본서도 이런 분위기의 단어 만들기가 재미있나보다.
그런데 저 포스팅 읽다보면 '그래서 어떻게 처신하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중2병에 대한 기사도 있다.(한겨례 중2병소재등장기사
ESC섹션은 워낙 유들유들한 주말섹션이다보니 이런소재들도 종종 나오긴 한다.

아무튼 내가 하는 행동들이 혹시 허세는 아닌지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을 해본 계기가 되었다. 감정은 실제로 가늠할 수 없지만 가끔씩은 그 정도를 표현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 냉정하게 돌아오게 마련이고, 스트레스도 해소되니까. 다수에게 알려진 연예인도 역시 사람인데, 당연한 일을 하는거다. 만약 그런데라도 풀지 않는다면 또 어떤 곳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일기장은 일기장에'라지만 요즘시대에 일기장보다 여기다 쓰는게 이상하게 편하다는 것도 핑계라면 핑계겠다.

드라마로 체득된 과장된 사실, 예를 들면 남녀의 연애라던가 학교에 미소년미소녀로 넘쳐난다던가, 굉장한 실연의 고통 등등. 그런 것들도 이러한 현실에 한 몫 하고있는건지도 모르겠고.. 허세부리기로 대표되는 이 현상을 지속적으로 연구해봐도 꽤나 흥미로울 것 같다.


덧글

  • 2008/08/21 10:2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ucapis 2008/08/23 00:37 #

    감사합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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