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口生活 (2009) 영화사 강의 후기 2009/07/09 21:07 by Lucapis


예전 포스팅에 써먹었던 사진인데 알아채는 사람은 없겠지.




0. 아직 종강 아니다.

아직 종강까지는 2번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마무리 한 것처럼 벌써부터 한 과목을 콕 집어 말하는 이유는, 다른 것도 아니고 오늘 영화사 강의 평가서를 제출해서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강의평가를 해봤는데 한국에서는 인터넷으로 하던 걸 여기선 OMR카드에 일일이 체크해서 제출하는 방식이라 교수님 앞에 제출할때 괜히 머쓱했다.


1. 왜 강의 이름이 영화사 2지?

정확한 이 강의의 이름은 1학기 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사 2'다. 왜 2일까. 2학기땐 반대로 영화사 1을 진행하겠거니 하고 다음학기 이곳을 생각하니 벌써 한국으로 돌아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2에서 영화사의 이미 대부분을 말했는데 1에선 의외로 최근의 영화에 대해 (근현대사처럼) 알아보는게 아닐까 하며 생각했다. 나중에 실라버스 확인해봐야지. 아, 아직 종강까진 3주 가까운 시간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귀국 하루 전마냥 싱숭생숭하다.


2. 초반 러시, 포기 못한 이유

영화사2 수업은 초장부터 나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유학생들만이 듣는 일본어 수업 3가지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일반 수업으로 나머지 6개 중 교수님의 말하는 속도가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야마구치대학가의 랩퍼라고 해도 될만큼. 주변에 좀 안면있던 또다른 유학생 매튜상에게 물어보자 자기도 도통 제대로 알아듣는게 좀 힘들다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매튜씨는 영국에서 유학온 학생인데 일본어를 굉장히 잘하는 노력파!)

그러면서도 이 수업 괜히 다른 걸로 돌리지 못한 이유는 한국에 소속된 학과와 전혀 다른 학과로 배정된 내가 그나마 전공 학점으로 인정받는 몇 안되는 수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울며불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수업이 적어도 레포트나 2주에 한번꼴로 꼭 보라고 했던 예술영화, 그리고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수도없이 못알아먹는 책을 펴보느라 초반엔 정말 힘들었었다. 심지어 출석표에 내 이름을 불러도 불렀는지도 몰랐을 만큼 정신없었다.


3. 교수님 분위기 때문이 아니야

하지만 중반부터 여유가 생기더니 지금은 이 수업의 묘미도 발견하게 되었다. '예술가라면 이런 외모가 아닐까..'할 정도의 포스를 가지고 계신 교수님(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주변 학생들도 그 교수님을 훈훈하게 여기고 있었다)도 좋았지만 매 수업마다 10~20년을 과거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재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난 역사과목은 늘 성적이 말썽이라 공부하는게 즐겁지 않았는데 이 과목만큼은 행복했다. 영화라는 예술이 생겨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지금 우리가 데이트 코스로 어김없이 선택하는 걸 보면 분명 이녀석이 대단하긴 한 것 같았는데 그것에 대해 크게 의문을 품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저번 학기때 대중문화 배우면서 헉 이놈은 뭐지 했고, 여태 다른 개론은 들었지만 영화개론과목은 미뤄두다 이곳에까지 와서 선택하면서 알게 되었다. 대중문화 강의에서 스타에 관한 산업에 대해 발표했었는데 그것이 탄생 계기가 헐리우드 영화산업(내가 배운 바로는). 그것과 맞물리면서 이 수업이 수월하게 느껴지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4. 매번 수많은 작품과 만났다

실제 강의시간은 1시간 30분, 50분가량은 교수님이 각 시대별 영화의 특징 감독소개를 해주시는데 그리고 나서 바로 그 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상영한다. 초반엔 무성영화에다 흑백이라 지루했었는데 가면 갈수록 뮤지컬에 오색찬란한 색깔에 유성영화로 바뀌니 비디오세대인 내가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다. 

그리고 과거 작품들을 보면서 이 작품의 장면이 훗날 지금의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마주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오늘 본 '파리의 아메리카인(여기서 본 일본 제목은 파리의 연인이었는데)-Vincente Minnelli감독작품'이라는 영화의 맨 첫장면은 비교적 최신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 등장 부분과 흡사했다. 


5. 다른건 뭔지

영화사 수업은 한국도 거의 다를 바 없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다. 영화 관련 수업이나 애니메이션 교양 수업을 들었던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흑백영화를 보여줘서 지루했어'라는 대사가 있었던 걸 보면 말이다.

이곳에 있으니 새삼 영화를 보고 싶어진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영화 관람가가 비싸게 책정되어 있고(약 1800엔-일본의 아르바이트 시급을 떠올리면 한 회 관람가로 이정도는 좀 큰 지출이긴 하지만 볼만할 지도. 하지만 한국이라면 당연히 이건 비싸고+비싼 가격이다.) CGV같은 대형 멀티플렉스도 없는 시골인데다 무엇보다 여기서 보면 모국어로는 전혀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 근처 시립예술회관에서 옛날 영화를 약간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어 문화생활은 좀 했던 것 같다. 그래도 한회 800~비싼건 1000엔정도로 한국정도의 관람료를 지불했다만 과제도 할 겸 좋은 경험 했다.


6. 이제 영화를 볼 때 좀 더 잘 볼 수 있겠지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예전에 봤던 책이나 음악, 혹은 영화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머리가 커져서, 머리의 피가 말라서; 라는 비유가 적절할라나. 내가 그렇게 느꼈을 때 나와 함께 봤던 어른들, 혹은 다른 장소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마음은 나랑 같지 않았을 것이다. 이젠 그 기분을 알수있으려나. 돌아가서 영화를 보면 이상한 곳을 곱씹어가며 볼 수 있을거란 기대감에 설렌다. 그리고 여태 관심없던 영화관련 도서를 한가득 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