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비 / 아버지 / DSLR 2007/08/14 05:15 by 루카피스


비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더이상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옳은 말일 거다.


오늘은 몸이 몹시도 아팠다.
어차피 밖에 나가보았자, 비에 옷이 젖어버리게 될 것이고 끈적거림을 경험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확실한 이유가 생겼으니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창문을 열고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나름대로는 붙잡아두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 창문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집 아래 보도블럭 위, 젖은 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어른이건, 나이든 노인분들이건, 우산을 쓰고 지나간다.
이런 오마주들이 등장하는 영화도 꽤 있지 참. 근데 오마주가 뭐야 껄껄.
나는 move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기 보단, 확실히 이 순간을 남겨두고 싶었다.
더불어 한달 전쯤 아빠와 단둘이서 DSLR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서로 나눈 게 생각이 났다.
주제는 아빠가 먼저 꺼냈었고 나는 그 주제에 대해 진작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즐겁게 이야기 나누었었다.
바람을 더 잡아두었어야 했을까. 나와 나머지 나의 가족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누구 하나는 디지털카메라 한대를 포기해야했다. 지금 디카는 내동생의 손아귀에 있다. 고로, 나는 평소 자꾸 찍어대던 버릇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어떤 장면을 보면 자꾸만 찍고 싶어졌다. 아무튼 한 대가 아니라 두 대가 필요하단 소리다.

그러고보니 최근들어 사람들이 하나 둘 거대한 몸체의 카메라를 여기저기 들고 다니는 것을 그리 괴롭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자랑처럼, 내 분신처럼 여기며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연신 찰카닥거린다. 솔직히 부럽다. 그 묵직한 느낌도, 카메라 가방도 부럽다. 내가 보기엔 그 자체가 이미 사진한장감이다. 나도 그 대세에 합류하고 싶었다. 
 

 아니, 확실히 지름신이 강림했다기 보단 나도 나이가 하나 둘 먹어가면서(헉 하지만 아주 많이 먹진 않았어!) 컴팩트 디지털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특성(디지털신호로 받아들여지는, 그리고 내 눈이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은 가벼운 감도)이 느껴졌고, 진실된 순간을 제대로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곡가능성을 줄여보고 싶었다.

 1초 1초 내 몸안의 세포는 나이를 먹는다. 그 시간을 멈출 수 없다. 다만, 기록할 수는 있다. 내 눈으로 보이는 풍경과 렌즈를 통해 보이는 풍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마음가는 대로 왜곡해버릴 수 있다. 운치있게, 또는 삭막하게말이다. 아빠도 그런 것 이었을거다. 내가 다들 데리고 다니는 거대한 카메라에서 관심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아빠는 시간을 기록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일안렌즈다, 혹은 SLR이다 뭐다 해서 지레 겁을 먹었었기 때문에 이야기에 더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다만, 무척이나 가지고 싶어요 아빠. 지금의 디카로 찍은 사진은 인화해서 보면 입자가 눈에 다 보여요.라고 했다.